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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운청산 | 2009/02/19 15:37

강부자 새나라'를 향해 진군 또 진군

"'강부자 새나라'를 향해 진군 또 진군"
프레시안 기사전송 2008-12-23 07:51
[홍성태의 '세상 읽기'] '강부자 공화국'의 '건국'

[프레시안 홍성태 상지대 교수]

2008년이 저물어간다. 올해는 놀라운 한 해였다. 그러나 새해는 더욱 더 놀라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내년 이맘때쯤에 이 나라는 과연 어떻게 변해 있을까?

지금 상태대로라면 내년 이맘때쯤에 이 나라는 확실히 ''강부자 공화국''이 되어 있을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추구하는 것은 몇몇 법률과 정책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목표는 이 나라를 ''강부자''가 지배하는 나라로 새롭게 ''건국''하는 것이다. 그들은 돈과 힘으로 완전무장하고 ''강부자 공화국''을 향해 맹렬히 진군하고 있다.

''강부자''는 단순히 ''강남 땅부자''가 아니다. ''강부자''는 이 나라를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자들을 뜻한다. 그들은 누구인가? <매일경제> 2007년 12월 12일자에 실린 "대한민국 1% 부자들은 누구?"라는 기사는 이에 관한 좋은 참고 자료이다. ''대한민국 1% 부자''는 ''소득이 많은 자''와 ''자산이 많은 자''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소득에 관해서는 <매일경제>에서 직접 통계청 자료를 조사했다. 이 기사를 보면, "''대한민국 1% 부자''란 전국 총가구인 1615만8000가구를 소득순으로 1등부터 1615만8000등까지 나열한 뒤 상위 16만1580등까지 가구를 의미"하며, "''대한민국 1% 부자''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2006년 기준 1억8276만 원"이다.

한편, ''자산이 많은 자''에 대해서는 최근에 자기 지역구에 재정을 배정해서 논란의 핵으로 떠오른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이 2007년 12월에 발표한 자료가 있다. <매일경제>의 같은 기사에서 보도된 이 발표의 내용에 따르면, "순자산 순위 1% 안에 들어가기 위한 가구별 최저 순자산액은 23억200만 원인 것으로 분석"되었고, "같은 기준으로 순자산 상위 5%, 10% 이내의 가구별 최저 순자산액은 각각 9억4846만 원과 5억3861만 원인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이에 비해 "전체 가구 평균 순자산액은 2억4164만 원"으로 나타났다. 1% 부자와 평균 사이의 차이가 무려 10배에 이른다.

''1% 부자''는 ''강부자''의 중요한 기준이다. 여기에는 0.00001%에 해당하는 재벌을 정점으로 해서 0.001%에 해당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초특부자도 있다. ''강부자'' 안에도 나름대로 상당한 격차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강부자''는 강력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 소득과 자산을 막론하고 그들의 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동산이다.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어떤 조사에서 46%가 부동산으로 재산을 모았다고 답한 반면에 주식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경우는 17%에 머물렀다. 전자가 1위였고, 후자가 2위였다. ''강부자''는 무엇보다 ''부동산 부자'', 다시 말해서 ''토건부자''이자 ''투기부자''이다.

▲ 이명박 대통령 당선 1년. 이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이른바 ''강부자''는 대한민국을 아예 ''강부자 공화국''으로 바꾸려는 듯하다. 2009년 이맘때쯤에는 나라가 어떻게 변해 있을까? ⓒ프레시안(만평=손문상)

한국의 부자들 중에서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나오지 않는 데에는 세금과 기부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제도적 차이가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이지만, 부자의 성격이 다른 것도 상당히 중요한 요인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버핏은 ''주식 부자''이고 게이츠는 ''기술 부자''이다. 막대한 재정을 탕진해서 투기를 조장하고 부패를 촉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토건국가의 ''천민 부자''들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강부자''는 어떤 나라를 꿈꾸는가? 그들이 ''건국''하고자 하는 ''강부자 공화국''은 과연 어떤 것인가? ''강부자 공화국''은 과연 모두가 잘 사는 나라일 수 있는가?

''강부자 공화국''은 결코 ''모두를 위한 공화국''이 아니라 오직 ''강부자를 위한 공화국''일 것이다. 그것은 헌법 제1조에 규정된 ''민주공화국''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강부자 공화국''이 어떤 문제를 지닐 것인지에 대해 세밀히 검토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주공화국''은 어떤 경우에도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가치이자 목표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강행하고 있는 정책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강부자 공화국''은 크게 여섯 가지 문제를 가질 것이다.

첫째, 극단적인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이 엄중한 때에 오히려 실업자와 비정규직을 늘리고, 나아가 비정규직의 최저임금마저 낮추는 비인간적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벼룩의 간을 빼 먹는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청년 인턴제''를 시행한다면서 그 자격을 대졸자로 제한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고용 정책이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노예가 되어 살거나 빨리 죽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 더욱이 갈수록 같은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중산층이 늘어나고 있다. ''강부자''는 자신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승자 독식 사회''를 원한다.

둘째, 토건국가의 극단화를 추구할 것이다. ''강부자''는 토건과 투기의 달인이다. ''강부자''는 무엇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토건국가의 극단화를 추구한다. ''강부자''는 ''정·관·재·언·학''의 5각 구조를 형성해서 불필요한 토건사업을 강행해서 막대한 이득을 취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보 기술이 일자리를 줄였다면서 일자리를 위해 ''녹색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한반도 대운하 계획''의 1단계인 ''하천 정비 사업''에서 잘 알 수 있듯이 ''회색 파괴''이다. 그것은 적은 수의 비정규직 삽질 고용을 일시적으로 늘리는 대신에 ''강부자''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줄 것이다. 토건국가는 지역을 파괴한다.

셋째, ''수도권 공화국''의 극단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현재 국토의 0.6%밖에 되지 않는 서울에 전체 인구의 22% 정도가 살고 있으며, 국토의 11%를 조금 넘는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50% 정도가 살고 있다. 서울/수도권은 과밀로 내파하는 반면에 다른 지역은 과소로 외파하고 있다. 우리의 수도권 집중은 말 그대로 ''망국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강부자''는 무엇보다 서울과 수도권에 가장 큰 이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강부자''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서울과 수도권의 집중화를 더욱 더 강화하고자 한다. ''강부자''는 수도권 규제 완화를 무마한다며 토건국가의 극단화를 추구해서 이중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길 것이다.

셋째, 모든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할 것이다. 언론매체는 크게 옛것과 새것으로 나뉘며, 옛것은 크게 신문과 방송으로 이뤄지고 새것은 인터넷으로 이뤄진다. 잘 알다시피 신문은 ''강부자''가 이미 장악하고 있으며, 방송은 오직 문화방송(MBC)만이 겨우 사실을 알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문화방송에 대해 ''정명''을 알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문화방송에 대한 사실상의 ''협박''이며, 언론의 자유를 희구하는 국민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이다. 인터넷의 자유도 이미 경각의 위기에 처했다. 올해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는 47위로 지난해의 39위에 비해 무려 8위나 떨어졌다.

넷째, 모든 교육을 장악하고 통제할 것이다. 이미 역사교과서 파동에서 잘 드러났듯이 ''강부자''는 역사까지 자기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올바른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지배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어느 민주국가에서 정부가 학자들을 무시하고 역사교과서를 일방적으로 수정해서 교육하도록 강요하는가? 역사교과서에만 한정해서 보자면, 이 나라는 이미 박정희 시대로 회귀했다. 덧붙여서 ''강부자''는 국제중 강행, 일제고사 강행, 부당한 교사 파면으로 잘 드러났듯이 학벌사회의 극단화를 통해 사람들을 무한경쟁으로 몰아넣고 있다.

다섯째, 친일·독재 세력의 부활이 이루어질 것이다. 놀랍게도 또 다시 반민족화와 반민주화가 맹렬히 추진되는 것이다. ''강부자''는 식민시대와 독재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반민족화와 반민주화를 이뤄야 자기들의 지배가 안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약속하면 사람들이 지난 대선 때처럼 자기들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교육을 장악해서 매일 자기들을 위한 교육을 하면 결국 사람들이 자기들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모든 언론을 장악해서 매일 TV를 통해 ''이명박 방송''을 하면 ''강부자 공화국''이 확립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는 경제 위기만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경제 위기를 악화시키고 사회위기를 촉진시키는 정치 위기인지 모른다. 저 암담한 유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고고70>이 현재의 상황에 대한 풍자로 여겨질 수 있을 정도로 지금 이 나라의 정치는 ''독재''를 향해 맹렬히 ''후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가 맹렬히 ''후진화''하면서 당연히 경제와 사회도 맹렬히 ''후진화''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강부자 공화국''이라는 후진적인 ''괴물 국가''의 형성을 목격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먹이가 되어야 할 것인가?

홍성태 상지대 교수 (tyio@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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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운청산 | 2008/12/23 19:04 | 시류에 동참 | 트랙백 | 덧글(0)

대보적경 제17권/5. 무량수여래회(無量壽如來會) ①


대보적경 제17권


5. 무량수여래회(無量壽如來會) ①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기사굴산 중에서 큰 비구중 일만 이천인과 함께 계셨으니, 그들은 다 큰 성문(聲聞)으로서 이름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존자 아야교진여(阿若橋陳如)·마등(馬騰)·대명유현(大明有賢)·무구(無垢)·수발타라(須跋陀羅)·선칭원만(善稱圓滿)·교범발제(?梵鉢提)·우루빈나 가섭(優樓頻羅迦葉)·나제 가섭(那提迦葉)·마하 가섭(摩訶迦葉)· 사리불·대목련·마하 가전연(摩訶迦?延)·마하 겁빈나(摩訶劫賓那)·마하 주나(摩訶注那)·만자자(滿慈子)·아니루타(阿尼樓馱)·이바다(離婆多)·상수왕(上首王)·주피안마구라(住彼岸摩俱羅)·난타(難陀)·유광선래(有光善來)·라후라(羅?羅)·아난 등이 상수가 되었다.
다시 보살중이 있었다. 말하자면 보현(普賢)보살·문수사리보살·미륵보살과 현겁(賢劫) 중의 모든 보살들이 앞뒤로 둘러쌌으며 또 현호(賢護) 등 십육장부가 함께 계셨으니, 말하자면 선사유의(善思惟義)보살·혜변재(慧辯才)보살·관무주(觀無住)보살·선화신통(善化神通)보살·광당(光幢)보살·지상(地上)보살·적근(寂根)보살·혜원(慧願)보살·향상(香象)보살·보당(寶幢)보살 등이 상수가 되어 다 보현(寶賢)의 도를 준수하고 보살의 일체 행원(行願)을 만족하며 일체 공덕 법 가운데 머물러서 모든 부처님의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러 일체 세계 가운데 등정각(等正覺)을 이루기를 원하였다.

또 원하기를 도솔타천에서 나서 그곳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에 강생하여 일곱 걸음 옮김을 나타내며, 큰 광명을 놓아 온 부처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스스로 '내가 일체 세간에 가장 높고 귀함이 되도다'라 외치고 제석천·범천이 모두 와서 친히 받들게 하리라.
또 글이며 산수·역수(曆數)·성명(聲明)·기교·의방·양생(養生)·부인(符印)과 장기 바둑 등 유희를 나타내어 보이되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며 몸이 왕궁에 있으면서도 오욕의 경계를 싫어하며 늙고 병들고 죽음을 보고 세상이 항상됨 없음을 깨달아 왕위를 버리고 성을 나와 도를 배우려 하며, 온갖 몸 꾸미개와 훌륭한 보배를 풀어 버리고 가사를 입고 육년 고행하여 오탁 세계를 위하여 이러한 시현을 지으며, 세간을 따른 까닭에 니련선하(尼連禪河)에 하수에 목욕하고 도량에 나아갈 적에 용왕이 맞이하여 찬탄하고 모든 보살중이 오른쪽으로 돌면서 찬양하리로다.

보살이 그때에 풀을 받아 보리수 아래에 펴고 가부좌를 맺으리라. 또 악마의 무리가 에워싸고 장차 해치려 할 적에 보살이 정력(定力)·혜력(慧力)으로 그것을 항복받고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거든 범왕(梵王)이 권청하여 법바퀴를 굴리되 용맹하여 두려움이 없으며, 부처의 음성이 진동하여 법고를 치고 법의 나팔을 불며, 큰 법의 당기를 세우고 바른 법의 횃불을 불사르며, 바른 법과 선정을 거두어 잡아 지니고 큰 법의 비를 내리어 뭇 생물을 윤택하게 하며, 큰 법의 우레를 쳐서 중생을 열어 깨치게 하고 모든 부처님 세계에 두루 광명을 비추어 세계 가운데 땅을 다 진동케 하며, 마의 궁전을 둘러엎어 파순을 떨게 하고 번뇌의 성을 깨뜨리고 모든 사견의 그물을 찢어 버리며, 흑법(黑法)을 멀리 여의고 온갖 백법(白法)을 내게 하며, 신자의 베푸는 공양을 능히 받고 능히 소화하며, 중생을 조복하기 위하여 묘한 이치를 선양하며, 혹 미소를 보여 백천광명을 놓으며, 관정계(灌頂階)에 올리어 보리기(菩提記)를 받으며, 혹은 불도를 이루며, 열반에 드는 것을 보이므로 한량없는 중생들이 다 번뇌가 다하게 하여 보살의 끝없는 착한 뿌리를 성취시키느니라.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 세계 가운데 능히 시현하되, 마치 요술쟁이[幻術師]가 요술을 잘 알아 남녀의 형상을 나타내어 보이고 그 가운데 실로 무엇을 얻을 것이 없듯이, 이와 같이 모든 보살들이 끝없는 요술의 공덕을 잘 배워서 능히 변화와 서로 응하는 법을 나타내어 보이되 능히 변화의 도를 잘 아는 까닭에 모든 불토(佛土)를 나타내고 큰 자비를 보여 일체 중생들이 다 보살의 원행을 닦게 하며, 한량없는 의리의 문을 성취하여 평등한 이치를 통달하되 일체 선법을 구족히 닦아 이루며, 모든 부처님 세계에 평등히 들어가서 항상 모든 부처님이 위신력을 더하여 주심이 되니라.'

일체 여래가 증명하고 인가하시어 보살을 가르쳐 아사리(阿?梨)를 지으며, 그에 맞는 끝없는 모든 행을 익히게 하며, 온갖 법계의 행하는 바를 통달하고 능히 중생계와 국토를 분별하며, 또한 항상 발심하고 정진하여 모든 여래를 공양하며, 갖가지의 몸이 마치 그림자와 같은 줄을 보며, 인타라(因陀羅)의 그물을 잘 배워서 능히 악마의 그물을 찢으며, 모든 사견의 그물을 무너뜨리고 중생의 그물에 들어가며, 능히 번뇌의 권속과 마군의 권속에서 뛰어나와 멀리 성문·벽지불의 경지에 나아가며,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의 법문에 들어가서 능히 방편선교에 안주(安住)하며, 처음에 이승 열반에 들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남이 없고[無生] 멸함이 없는[無滅] 모든 삼매에 들어가며 일체 다라니문을 얻어서 광대한 모든 감관[根]과 변재가 결정되어 보살 장법(藏法)을 잘 분별해 알며, 불화삼매(佛華三昧)에 때를 따라 깨달아 들어가서 일체 깊은 선정을 갖추며, 일체 부처님이 다 앞에 나타나시어 한 생각 가운데 두루 불국토에 노닐어 널리 돌아가고 돌아오되 그때를 달리하지 아니하며, 어려움[難]과 어렵지 않은[非難] 가장자리에서 능히 그 가장자리를 깨달아 알며, 실상의 이치를 부연하되 차별을 잘 알며, 부처님의 변재를 얻었으되 보현행(普賢行)에 머물러서 중생의 언어를 분별하며, 세간의 법에 뛰어나서 일체 세간을 벗어나는 법을 잘 알며, 자구(資具)가 자재한 바라밀다를 얻어서 중생을 짊어지고 청하지 않아도 일부러 벗이 되며, 능히 일체 여래의 법장을 지니고 편히 머물러서 일체 불종(佛種)을 끊지 않으며, 중생을 불쌍히 여기어 능히 법의 눈을 열어 주며, 모든 악취의 문을 닫고 선취의 문을 열며, 두루 중생을 관찰하되 능히 부모·형제의 생각을 지으며, 일체 공덕을 찬탄하는 바라밀다를 증득하여 능히 여래의 일체 공덕을 찬탄하며 나머지 모든 공덕을 칭찬하는 법을 분별하여 알더라. 이와 같은 보살대사가 한량없었다.

그때에 존자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정돈하고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끓어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사뢰었다.
“대덕 세존이시여, 신색 감관이 다 청정하며 위광(威光)이 빛나기가 금 무더기 같으며, 또 밝은 거울이 광채가 빛나듯 하옵니다. 예로부터 일찍이 보지 못한지라. 기뻐하여 우러러뵈옵고 희유한 마음을 내옵나이다.
세존이시여, 이제 대적정(大寂定)에 드시어 여래의 행을 행하여 다 원만하오며 능히 대장부의 행을 이룩하여 삼세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나이다.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이 생각에 머무르나이까?”

그때에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제 어떻게 이 뜻을 알았느냐? 모든 하늘이 와서 너에게 일러 주었느냐? 나를 보고 스스로 알았느냐?”
아난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제가 부처님의 서광이 희유함을 보고 이 생각을 낸 것이옵고 하늘이 일러 준 것이 아니옵니다.”
“착하다. 네가 이제 쾌히 물음이여. 능히 잘 관찰하고 미묘한 말솜씨로 여래에게 이러한 뜻을 물었도다. 네가 일체 여래 응정등각께서 대비심에 머물러서 중생을 이익케 함이 마치 우담화와 같이 희유하게 세상에 출현함을 생각하고 이 뜻을 물었으며, 또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이락케 하기 위하여 능히 여래에게 이러한 뜻을 물었도다.

아난아, 여래 응정등각은 능히 한량없는 지견을 잘 열어 보이느니라. 왜냐하면 여래의 지견은 장애가 없느니라. 여래 응정등각이 세상에 오래 머무르고자 하면 능히 잠깐 동안에 한량없고 수없는 백·천·억 나유타 겁을 머무르거나 혹은 위와 같은 수량을 지나가되 여래의 몸과 모든 감관은 늘고 줆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는 삼매를 얻어 자재로이 저 언덕에 이르러서 온갖 법에 자재하니라. 이러므로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내가 너를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아난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그러하오리다. 듣고자 하나이다.”
“아난아, 지나간 옛적에 수없이 많은 겁을 지나서 부처님이 출현하셨으니, 이름은 연등(燃燈)이라. 저 부처님으로부터 많은 수량을 지나서 고행불(苦行佛)이 세상에 출현하였다. 고행불 다음에 여래가 있었으니, 이름은 월면(月面)이라. 월면불 다음에 얼마를 지나서 전단향불(?檀香佛)이 있었다. 그 부처님 다음에 소미로적불(蘇迷盧積佛)이 있었고 그 부처님 다음에 다시 묘고겁불(妙高劫佛)이 있었느니라.

이와 같이 잇달아서 이구면불(離垢面佛)·불염오불(不染汚佛)·용천불(龍天佛)·산성왕불(山聲王佛)·소미로적불·금장불(金藏佛)·조요광불(照耀光佛)·광제불(光帝佛)·대지종성불(大地種性佛)·광명치성유리금광불(光明熾盛琉璃金光佛)·월상불(月像佛)·개부화장엄광불(開敷花莊嚴光佛)·묘해승각유희신통불(妙海勝覺遊戱神通佛)·금강광불(金剛光佛)·대아가타향광불(大阿伽陀香光佛)·사리번뇌심불(舍離煩惱心佛)·보증장불(寶增長佛)·용맹적불(勇猛積佛)·승적불(勝積佛)·지대공덕법시신통불(持大功德法施神通佛)·영폐일월광불(映蔽日月光佛)·조요유리불(照耀琉璃佛)·심각화불(心覺花佛)·월광불(月光佛)·일광불(日光佛)·화영락색왕개부신통불(花瓔珞色王開敷神通佛)·수월광불(水月光佛)·파무명암불(破無明暗佛)·진주산호개불(眞珠珊瑚蓋佛)·저사불(底沙佛)·승화불(勝花佛)·법혜후불(法慧吼佛)·유사자후아안성불(有師子吼餓?聲佛)·범음룡후불(梵音龍吼佛) 등 이러한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셨으니 서로 겁수의 거리가 다 수량을 지났느니라.

그 범음룡후불이 세상에 나오시기 앞서 무량수 전에 세주불(世主佛)이 계셨고 세주불 다음 무수 겁에 출현하시니 이름이 세간자재왕 여래·응정·등각·명행원만·선서·세간해·무상장부·조어사·천인사·불세존이었다.
아난아, 그 부처님 법 가운데 한 비구가 있었으니, 이름은 법처(法處)였다. 특수한 행원과 염혜력(念慧力)이 뛰어나서 그 마음이 굳건하여 흔들리지 않았으며, 복과 지혜가 수승하고 형상이 단엄하였느니라.
아난아, 그 법처 비구가 세간자재왕 여래 앞에 나아가서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부처님께 향하여 합장하고 게송으로 찬탄하였느니라.”

여래의 한량업고 끝없는 광명
온 세상 어떤 빛으로도 견줄 수 없네.
저 해와 달이나 마니보배 빛들은
부처님의 위광에 다 가리어 버렸네.

세존이 능히 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건만
중생들 각기 제 소리대로 알아듣도다.
또 능히 하나의 묘한 육신 나타내시면
두루 중생이 제 모양대로 보게 되도다.

계와 정·혜와 정진 및 많이 들음
모든 중생들 그 누가 비슷하리.
깨침의 지혜 바다와 같이
능히 깊은 법을 잘 분별하시네.

번뇌 다하고 허물 여의셔 인간·천상 공양받으시니
이러한 성덕은 오직 부처님 한 분
부처님은 수승한 큰 위광을 가지시고
한량없는 시방 세계를 두루 비추시네.

내 이제 모든 공덕 찬탄하오니
바라건대 복과 지혜 여래와 같이
이 세상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
온갖 고통·번민 건져지이다.

원컨대 삼매에 안주(安住)하여서
보시·지계·인욕·정진 모든 법문과
선정·지혜 닦는 법을 연설하여서
끝내 부처되어 중생 건지리.

위없는 큰 보리 구하기 위해
시방의 모든 부처 묘각(妙覺)님과
백·천 구지(俱?) 나유타 항하 모래처럼 많은 수의
한량없는 부처님을 공양합니다.

원컨대 큰 신통의 광명을 얻어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불세계를 두루 비추며
가없는 용맹스런 정진력으로
장엄한 좋은 국토 얻어지이다.

이렇게 뛰어난 불국토 중에
중생들 안락하고 이익하오니
시방에 거룩하온 모든 보살도
그곳에 태어나기 발원하도록.

부처님의 성지(聖智)만이 증명하소서.
제가 이제 희구하는 견고한 힘을
가령 저 무간지옥 잠길지라도
이 원만은 끝내 물러감 없이
일체 세간의 걸림 없는 지혜시여
마땅히 이런 마음 살펴 아시리.

“다시 아난아, 법처비구가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세존께 사뢰었느니라.
'제가 이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여래계서 저를 위하여 이러한 법을 연설하시와 세간 중생으로 무등등(無等等)을 얻어 큰 보리를 이룩하게 하시며, 청정하게 장엄된 불국토를 선택하여 거두어 들이도록 하소서.'

부처님은 비구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스스로 청정 불국을 선택하여 거두어 들이도록 하라.'
법처비구는 부처님게 사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위력으로 능히 선택하여 거두어 들일 수 없사오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 다른 불토의 청정한 장엄을 말씀하여 주시면 저희들이 듣자옵고 맹세코 원만히 하겠나이다.'
그때에 세존은 널리 이십일억 청정 불토의 구족한 장엄을 말씀하였느니라. 이 법을 설하는데는 일억 년이 지났느니라.
아난아, 법처비구가 저 이십일억 모든 불토 가운데서 장엄된 일을 다 거두어 받고는 오겁 동안 불국토를 장엄하는 행동을 생각하고 익혔느니라.”

아난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세간자재왕 여래의 수량(壽量)은 얼마나 되나이까?”
“그 부처님의 수량은 만 사십겁이었느니라. 아난아, 저 이십구지의 불국토의 장엄에 있어서 법처비구의 불국 장엄의 원행은 그것보다 뛰어났느니라. 이미 그러한 불국 장엄의 원을 거두어 받고는 세간 자재왕 여래의 처소에 나아가서 정례(頂禮)하고 오른쪽으로 일곱 바퀴 돌고 한쪽에 물러서서 세존께 사뢰었느니라.
'제가 이미 구족한 공덕으로 불국토를 장엄하는 일을 선택하여 거두어 들이었나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느니라.
'지금이 바로 그때니라. 너는 마땅히 갖추어 말하여 대중들을 기쁘게 하며, 또한 대중들이 다 장차 원만한 불토를 선택하여 거두어 들이도록 하여라.'

법처비구는 사뢰었느니라.
'바라옵건대 세존은 큰 자비로 들어 주시옵소서. 제가 이제 수승한 원을 말하리이다. 만일 제가 무상보리를 증득할 때에 그 나라 가운데 지옥취·아귀취·축생취가 있다면 끝내 무상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 중생이 삼악취에 떨어지는 자가 있다면 끝내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 중생이 다 같이 진금색(眞金色)이 아닐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 중생의 형상과 모양이 서로 다르고 곱고 미운 것이 있을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 중생이 숙명지(宿命智)를 얻어서 억 나유타 모든 겁의 일을 알지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 중생이 하늘 눈이 없어서 억 나유타 불국토를 보지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 중생이 하늘 귀를 얻지 못하여 억 나유타 선나(繕那) 밖의 부처님의 설법을 듣지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 중생이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가 없어서 억 나유타 모든 불국토의 중생의 마음을 알지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 중생이 조금이라도 나와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있을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 중생이 결정코 정각을 이루어 큰 열반을 증득하지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광명이 한정이 있어서 억 나유타 불국토를 비치지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수량이 한정이 있어서 구지 나유타 산수의 겁으로 한정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에 있는 성문의 수를 알 수 없을지니, 가령 삼천대천세계 중생과 연각이 백·천 세 동안 그 지혜를 다하여 헤아릴지라도 능히 알지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 중생이 수량이 한정이 있을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다만 원력으로 태어난 것을 제하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 중생이 좋지 못한 이름이 있을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저 한량없는 세계에 수없는 부처님이 같이 나의 국토를 감탄하고 칭찬하시지 않을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무등정각을 증득할 때에 다른 불국의 모든 중생이 나의 이름을 듣고는 지닌 바 착한 뿌리로 회향하여 나의 나라에 나기를 원하며 열 번 염불하고 만일 얻어 나지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오직 무간지옥업을 지어서 바른 법과 성인을 비방한 자는 제외하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다른 세계 중생이 보리심을 발했거나 나의 처소에서 청정한 생각을 일으키고 다시 착한 뿌리로 회향하여 극락에 나기를 원하면 그 사람이 목숨을 마칠 때에 제가 모든 비구중과 같이 그 사람 앞에 나타나리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한량없는 세계 중생이 나의 이름 말하는 것을 듣고 자기의 착한 뿌리로 극락에 회향하리니 만일 나지 못할진대 보리를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 보살이 다 삼십이상을 성취하지 못하면 보리를 취하지 않으리이다.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 여러 보살이 큰 보리를 얻어 다 일생보처(一生補處)의 자리에 올라지이다. 오직 큰 원력보살로서 모든 중생을 위하여 정진의 갑주를 입고 부지런히 이익을 행하여 큰 열반을 닦아 모든 부처님 나라에 두루하면서 보살행을 행하되 모든 부처님 여래를 공양하고 항상 중생을 성취시키어 위없는 깨달음에 머무르게 하면, 이는 닦는 바 행이 앞의 것보다 거룩하리니 보현도(普賢道)를 행하여 해탈을 얻으려는 이는 제외하리이다. 만일 그렇지 않을진대 보리를 취하지 않으리이다.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매양 새벽에 다른 세계 내지 한량없는 억 나유타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되,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곧 공양할 때에 본국에 돌아오리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보리를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저 세계 모든 보살중이 필요한 모든 공양구로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착한 뿌리를 심어서 이러한 종류를 뜻과 같이 원만케 하지 못할진대 보리를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의 보살이 모든 법요(法要)를 설하되 온갖 지혜에 따라 들어가지 못할진대 보리를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에 태어난 모든 보살이 만일 나라연(那羅延)이란 금강역사(金剛力士)의 힘이 없을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에 가득 찬 온갖 장엄구를 중생이 능히 다 연설할 수 없으며, 하늘 눈이 있는 자라도 능히 있는 바 갖가지 형색과 빛깔과 모양을 분별해 알지 못하여지이다. 만일 능히 알고 다 말할 수 있을진대 보리를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에 한량없는 빛깔의 나무가 있어 높이가 백·천 유순인데 보살 가운데 착한 뿌리가 미약한 자라도 만일 다 분별하여 알지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의 중생이 경전을 읽어 외우고 교수하고 연설하되, 만일 훌륭한 말솜씨를 얻지 못할진대 보리를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의 보살이 끝없는 변재를 성취하지 못할진대 보리를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국토의 광명이 깨끗하여 그와 비등함이 없으며 한량없는 부처님 세계를 사무쳐 비추되 밝은 거울 속에 얼굴이 나타나듯 하여지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나라 안의 땅과 허공에 한량없는 향이 있으며 다시 백·천·억 나유타의 온갖 보배 향로가 있어서 그 향기가 두루 허공계에 사무치며 그 향기의 미묘하기가 인간·천상에 뛰어난 것으로서 여래와 보살중에 받들어 올려지이다. 만일 그렇지 못할진대 보리를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시방 한량없는 중생들이 부처님의 위덕 광명이 비치어 부딪침을 입으면 신심이 안락하여 인간·천상에 뛰어나지이다. 만일 그렇지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 세계의 보살들이 나의 이름을 듣고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여 다라니를 얻지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수없는 불가사의한 모든 불국토 가운데 모든 여인이 나의 이름을 듣고는 청정한 신심으로 보리심을 내어 여인의 몸을 싫어하여지이다. 만일 오는 세상에 여인의 몸을 버리게 하지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한량없는 불국토 중생들이 저의 이름을 듣고는 무생법인을 얻어지이다. 만일 거룩한 법행을 닦아 행하여 큰 보리에 이르지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시방 한량없는 불국토의 모든 보살들이 나의 이름을 듣고는 오체를 땅에 던지어 청정한 마음으로 보살행을 닦아지이다. 만일 천상·인간이 예경하지 않을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 중생이 수용하는 의복이 생각에 따라 곧 이르며 부처님이 명령하시는 선래비구의 법복이 절로 몸에 있어지이다. 만일 그렇지 않을진대 보리를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모든 중생들이 겨우 나의 나라에 나면서 수용품이 다 갖추어지고 마음이 깨끗하고 안락하기를 마치 번뇌가 다한 비구와 같지 않을진대 보리를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의 중생이 마음으로 모든 불국토의 수승한 정엄을 보고자 하거든 보배나무 사이에서 다 나타나되 마치 거울에 그 얼굴이 나타나듯 하여지이다. 만일 그렇지 않을진대 보리를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불국토의 모든 중생이 나의 이름을 듣고 부처가 되기까지의 모든 몸 감관[身根]을 갖추지 못하고 덕용이 넓지 못할진대 보리를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불국토의 모든 보살이 나의 이름을 듣고는 모두 거룩한 삼매의 명자·언어를 잘 분별하지 못하거나 보살이 저 삼매 가운데 머물러서 일찰나의 사이에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지 못하거나 또는 현신(現身)으로 육신통을 증득치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다른 불국토의 모든 보살이 저의 이름을 듣고는 목숨이 진 뒤에 호귀한 집에 태어나지 않을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다른 불국토의 모든 보살이 나의 이름을 듣고는 즉시로 보살행을 닦아서 청정하고 기뻐하며 평등주(平等住)에 머물러서 모든 착한 뿌리를 갖추지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다른 세계의 보살이 나의 이름을 듣고 다 평등 삼매의 문을 얻으며, 이 정(定) 속에 머물러서 항상 한량없는 모든 부처를 공양하며, 부처가 될 때까지 끝내 물러가지 않아지이다. 만일 그렇지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그 나라의 보살이 그 뜻에 따라 법을 얻어듣고자 하면 절로 얻어지이다. 만일 그렇지 못할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무상보리를 증득할 때에 다른 불국토의 모든 보살이 나의 이름을 듣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물러감이 있을진대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만일 제가 부처가 될 때에 다른 불국토의 모든 보살이 나의 이름을 얻어듣고 즉시 제일, 제이, 제삼의 법의 지혜를 얻지 못하거나 모든 부처님의 법에 능히 그 몸으로 불퇴전을 증득하지 못할진대 보리를 취하지 않으리이다'라고 하였느니라.”

그때에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저 법처비구가 세간자재왕 여래 앞에서 이러한 원을 세우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으사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내 이제 부처님 앞에 큰 서원 발하오니
마땅히 가장 높은 보리를 증득할 때에
만일 이러한 원을 채우지 못하오면
십력(十力)의 무등존(無等尊) 취하지 않으리이다.

마음으로 항상 보시를 행하여
널리 빈궁을 건져 괴로움 면케 하여
세간을 이익하여 안락케 못한다면
구세(救世)의 법왕을 이루지 않으리이다.

내가 보리를 얻으려고 도량에 앉을 때에
그 이름 시방 세계 한량이 없는
갖가지의 불국토에 두루 하지 못한다면
십력의 세중존(世中尊)을 취하지 않으리이다.

바아흐로 위없는 보리에 나아가
집을 떠나 욕심 여읜 경계를 구하려 할 때
그곳에 바른 생각·지혜의 행 없다면
조어(調御)·천인사가 되지 않으리이다.

바라건대 부처님의 무량광(無量光) 얻어
시방의 불국토에 두루 비추어
탐욕·진에·어리석음 없애 버리고
세간의 모든 악취 끊어지이다.

바라건대 빛을 얻어 지혜눈[慧眼]을 열어
삼계(三界)의 어둠 깨뜨려 버리고
모든 액난 없애어 남김이 없이
인간·천상에 안처(安處)하는 대위자(大威者)되리.

본행(本行)을 닦아 익혀 깨끗이 하고
한량없는 위신력을 성취하여서
해와 달 모든 하늘 마니화주(摩尼火珠)의
온갖 광명을 다 가리워지이다.

거룩한 대장부의 행을 닦고는
빈궁한 백성에게 복장(伏藏)이 되어
착한 법 가득 채워 견줄 데 없이
저 대중 가운데 사자후하리.

지난날 모든 부처 공양드리고
많은 겁에 모든 고행 닦아 행하여
거룩한 지혜 공덕 구하시어서
본원을 다 채우신 인천존이여.

여래의 지견은 걸림이 없어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을 다 아시네.
바라건대 나도 장차 견줄 데 없는
거룩한 참도사 되게 하소서.

제가 만일 큰 보리 증득할 때엔
이러한 넓은 서원 둥글게 채워
삼천대천 불국토를 진동하고
하늘 사람 공중에서 꽃비 내리며.

그때에 대지도 모두 진동하며
하늘 꽃 풍악소리 허공에 차고
전단향 가는 가루 비오듯 하며
오늘에 보살이 도 이룬다고.

“아난아, 저 법처비구가 세간자재왕 여래와 모든 천상·인간·마(魔)·범(梵)·사문·바라문 앞에서 이러한 크고 넓은 서원을 발하고는 다 이미 세간의 희유함을 성취하였느니라.
이 원을 발하고는 여실히 온갖 공덕에 머물러서 위덕이 광대한 청정 불국토를 구족히 장엄하였느니라.

이러한 보살행을 닦아 익힐 때에 한량없는 나유타 겁에 일찍이 탐심·진심 및 어리석은 마음과 남을 해치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의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모든 중생에게 항상 사랑하고 공경하기를 친척처럼 하며, 그 성품이 온화하여 같이 처하기가 쉬우며, 와서 구걸하는 자에게 그 뜻을 거스르지 아니하고 좋은 말로 권유하며 마음으로 따라주지 않음이 없으며, 생활 수용품은 신명을 지탱함을 바랄 뿐 욕심이 적고 족한 줄을 알며, 항상 조용함을 즐거워하고 성품이 총명하여 꾸미거나 거짓됨이 없으며, 그 성질이 조화되어 포악함이 없고 모든 중생에게 항상 사랑스럽고 참을성이 있으며, 마음이 간사하게 아첨하지 아니하고 또한 게으르지 아니하며, 좋은 말로 충고하여 모든 착한 법을 구하게 하며, 널리 중생을 위하여 용맹하되 물러감이 없으며, 세간을 이익케 하되 큰 원이 이미 찼으며, 스승을 받들어 섬기고 불(佛)·법(法)·승(僧)을 공경하며, 보살행에 항상 갑주를 입으며, 뜻이 적정을 즐겨하여 모든 염착(染着)을 여의며, 중생으로 하여금 항상 백업(白業)을 닦게 하며, 착한 법 가운데 상수가 되어서 공하고 상이 없고 원이 없는 데 머물러 조작함도 없고 나는 것도 없고 일어남도 없고 멸함도 없었으며, 교만함도 없었느니라.

그가 보살도를 행할 때에 항상 언어를 보호하여 말로써 남이나 자기를 해롭게 아니하고 항상 말로 자기와 사람을 이익케 하였느니라.
만일 왕성이나 촌락에 들어가 비록 모든 빛깔을 불지라도 마음에 물듦이 없었으며 청정한 마음으로 애착하지 않고 미워하지도 아니하였느니라.

보살이 그때에 또 보시를 스스로 행하고 또한 사람들이 은혜 베풂을 행하게 하며, 보시바라밀 내지 반야바라밀에도 앞에서와 같은 두 가지의 행을 일으켜 다 원만케 하였느니라. 이러한 모든 착한 뿌리를 성취하므로 태어나는 곳에 한량없는 보배 복장(伏藏)이 절로 솟아나오며, 다시 수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무르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끝없는 보살들로 하여금 묘한 행을 일으켜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어 부처를 이루게 한 것은 말로 다 분별하여 알 수 없느니라.
혹은 전륜왕이 되며 혹은 제석천왕·소염마천왕·도솔타천왕·선화천왕(善化天王)·타화자재천왕·대범천왕이 되어서 다 능히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며, 또한 부처님께 청하여 법바퀴를 굴리게 하며, 혹은 염부제왕과 장자·재관(在官)·바라문·찰제리 등이 되어 모든 종성(種姓) 가운데서 다 능히 모든 부처님을 존중 공양하며, 또 능히 한량없는 법문을 연설하며, 이로부터 길이 세간을 버리고 정각을 성취하였느니라.

그리고 저 보살이 능히 가장 미묘한 의복·와구·음식·의약 등으로 몸이 다하도록 모든 여래를 공양하여 안락하게 하였나니, 이와 같이 갖가지로 착한 뿌리를 둥글게 채운 것은 능히 다할 수 없느니라.
입에서는 항상 전단의 묘한 향기를 내뿜어 그 향기가 한량없는 세계에 사무치며, 다시 온갖 털구멍으로부터 인간·천상에 뛰어나는 우발라꽃의 미묘한 향기가 나오며, 태어난 곳마다 상호가 단정하고 원만하며, 또 무슨 수용물이 자재로운 바라밀을 얻어서 일체의 수용이 모자람이 없었다. 말하자면 모든 보배며, 향이며, 꽃이며, 당기며, 번기며, 일산이며, 가장 묘한 의복·음식·탕약과 모든 보배 창고의 진기한 물품이 다 보살의 손바닥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며 몸의 모든 털구멍에서 일체 인간·천상의 음악이 연출되었느니라. 이러한 인연으로 능히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아욕다라삼먁삼보리'에 안주케 하였느니라. 아난아, 내가 이제 법처보살의 본래의 수행을 말하였도다.”

그때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그 법처보살이 보리를 성취함은 과거가 됩니까, 미래가 됩니까? 현재의 다른 세계에 있음이 되나이까?”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에서 서방으로 십만억 불국을 지나가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은 '극락(極樂)'이고, 법처비구가 그곳에서 부처가 되었으니 호는 '무량수(無量壽)'라. 현재에 법을 설하시나니 한량없는 보살과 성문중이 공경스레 둘러쌌느니라.
아난아, 그 부처님의 광명이 부처님 세계에 두루 비치되 한량이 없고 사의할 수 없느니라. 내가 이제 간략히 말하리라. 그 광명이 동방으로 항하 모래처럼 많은 수의 세계를 비치며 사방·사유(四維)·상하로도 또한 그러하니라. 오직 모든 부처님의 본원(本願)의 위신력으로 힘입하는[加持] 바는 제하고 다 비추어 밝히니라.

그 광명은 혹은 한 길을 더하기도 하고 혹은 한 유순이나 억 나유타 유순 광명을 더하기도 하며, 혹은 두루 부처님 세계에 비치기도 하느니라.
그 광명은 혹은 한 길을 더하기도 하고 혹은 한 유순이나 억 나유타 유순 광명을 더하기도 하며, 혹은 두루 부처님 세계에 비치기도 하느니라. 이런 뜻에서 '무량수불'이 다시 다른 이름이 있으니 말하자면 무량광이라 하며, 무변광(無邊光)·무착광(無着光)·무애광·광조왕단엄광(光照王端嚴光)·애광(愛光)·희광(喜光)·가관광(可觀光)·부사의광·무등광·불가칭량광·영폐일광(映蔽日光)·영폐월광·엄탈일월광(掩奪日月光)이라 하느니라.
그 광명이 청정 광대하여 두루 중생의 몸과 마음으로 기쁘고 즐겁게 하며, 또한 일체 부처님 세계의 하늘·용·야차·아수라 등으로 하여금 다 기쁘게 하느니라.

아난아, 내가 이제 그 부처님의 광명을 열어 보이려면 한 겁이 차도 능히 다하지 못하리라.
다시 아난아, 무량수여래의 모든 성문 대중을 가히 헤아리되 그 가장자리를 알지 못하느니라. 가령 비구가 억 나유타의 수가 있되, 다 맑아 목련과 같이 신통이 자재하여 새벽에 대천세계를 두루 돌고 잠깐 동안에 도로 본처에 이른다고 하자. 그런 이들이 억 나유타세(歲)를 두고 같이 무량수불 처음 모임의 모든 성문을 계산하되 그 신력을 다하여 멸도(滅度)하기에 이르더라도 백분 중에 일분도 알지 못하며 천분·백천분 내지 우파니사담분 중의 일분이라도 알지 못하리라.

아난아, 마치 큰 바다의 깊이가 팔만 사천 유순이 된다면 눈으로 한껏 바라보아도 그 끝을 알지 못하리라. 만일 어떤 장부가 한 터럭 끝을 쪼개어 오십분을 만들고 그 일분으로 큰 바닷물을 찍어 냈다면 아난아, 그 물방울을 큰 바닷물에 견주면 어떤 것이 많겠느냐?”

“가령 천 유순의 물이라도 오히려 적겠거든 하물며 터럭 끝 분으로 견줄 수 있사오리까?”
“아난아, 가령 억 나유타 수의 비구가 다 대목련과 같이 있어 백·천·억 나유타세를 지나도록 무량수 여래의 처음 모임의 성문을 계산할지라도 그 아는 수량이 저 터럭 끝의 한 방울 물과 같고 나머지 헤아리지 못함은 마치 큰 바다와 같으리라. 모든 보살중도 또한 그러하여 산수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니라.
아난아, 저 부처님 수명이 한량없고 끝이 없어서 그 겁 수의 많고 적음을 알 수 없으며, 성문·보살 및 모든 인간·천상의 수량도 또한 그러하니라.”

아난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지 지금 얼마나 되었사옵기에 능히 이러한 수명을 얻었나이까?”
“아난아, 저 부처님이 출현하신 지 지금 십겁이 되셨느니라.
다시 아난아, 저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지 지금 얼마나 되었사옵기에 능히 이러한 수명을 얻었나이까?”
“아난아, 저 부처님이 출현하신 지 지금 십겁이 되셨느니라.

다시 아난아, 저 극락세계는 한량없는 공덕으로 구족히 장엄되었으며, 국토가 풍족하고 하늘 사람이 치성하며, 성품이 화열(和悅)하여 항상 안온을 얻으며, 지옥·축생 및 염마왕계가 없고 온갖 향이 두루 풍기며, 온갖 묘한 꽃이 또한 충만하느니라. 칠보의 당기[幢]줄을 맞추어 펴 있으며 그 보배 당기 위에는 모든 번기와 일산 및 보배 방울을 달았으니 백·천 가지의 잡색이 구족하니라.
아난아, 저 국토에 보배 나무가 많으니, 혹은 순황금이며 백은·유리·파리·적주(赤珠)·마노·옥으로 된 나무였느니라. 혹은 오직 한 가지 보배로 이룩되어 다른 보배가 섞이지 않았으며, 혹은 두 가지의 보배 내지 칠보로 장엄되었느니라.

아난아, 그 금으로 된 나무는 금으로 뿌리와 등걸이 되고 백은으로 잎과 꽃과 열매가 되었으며, 백은의 나무는 은으로 뿌리와 등걸이 되고 황금으로 잎과 꽃과 열매가 되었으며, 마노의 나무는 마노로 뿌리와 등걸이 되고 아름다운 옥으로 잎과 꽃과 열매가 되었으며, 아름다운 옥나무는 옥으로 뿌리와 등걸이 되고 칠보로 잎과 꽃 및 열매가 되었으며, 혹은 금나무가 있으니 황금으로 뿌리가 되고 백은으로 등걸이 되고 유리로 가지가 되고 파리로 잔가지가 되고 적주(赤珠)로 잎이 되고 마노로 꽃이 되고 미옥(美玉)으로 열매가 되었느니라. 혹 어떤 은나무는 은으로 뿌리가 되고 황금으로 등걸이 되고 나머지 열매는 꾸며지기가 금나무와 같으며, 유리나무는 유리로 뿌리가 되고 황금으로 등걸이 되고 나머지 열매는 꾸며지기가 금나무와 같으며, 유리나무는 유리로 뿌리가 되고 황금으로 등걸이 되고 미옥으로 가지가 되고 파리로 잔가지가 되고 마노로 꽃이 되고 미옥으로 열매가 되었느니라. 파리·진주·마노 등의 나무도 모든 보배로 서로 꾸며짐이 다 유리나무와 같으니라.

다시 옥나무가 있으니 옥으로 뿌리가 되고 황금으로 등걸이 되고 백은으로 가지가 되고 유리로 잔가지가 되고 파리로 잎이 되고 적주로 꽃이 되고 마노르 열매가 되었느니라.
다시 한량없는 마니주 등의 보배로 장엄된 나무가 있어서 그 나라에 두루 펴 있으니 이 모든 보배나무는 광채가 혁혁하여 세상에 견줄 데 없으며 칠보의 그물로 그위를 덮었는데 그물이 부드럽고 연하기가 도라면(도羅綿)과 같으니라.

다시 아난아, 무량수불이 보리수가 있으니 높이가 십육억 요오자나요, 가지와 잎은 팔억 유순을 드리워 폈으며 나무 뿌리는 높이 일어나기 오천 유순이요, 그 둘레도 또한 그러하였다. 그 가지·잎·꽃·열매가 항상 한량없는 온갖 묘한 빛깔과 또는 모든 진기한 보배로 장엄되었으니, 이른바 월광마니보며 석가비능가보며 심왕(心王)마니보며 해승류주(海乘流注)마니보며 광명이 두루비치어 인간·천상을 뛰어넘었느니라. 그 나무위는 금고리로 연결하여 내린 보배의 영락으로 두루 장엄하였으니 말하자면 노차가보(盧遮迦寶)며 말차보(末?寶)며 붉고 희고 푸른 빛깔의 진주 등의 보배로 영락을 삼았느니라.

사자 구름덩이 보배 등으로 수실을 삼아 모든 보배 기둥을 장식하였으며 또는 황금·진주·잡보의 방울로 그물을 삼은 장엄한 보배 수실이 그 위를 덮었으니 파리만자(萬字:卍字)·반월보(半月寶) 등이 서로 반사되었느니라.
실바람이 불어 움직이면 갖가지의 소리를 내며 천 세계 중생으로 제각기 좋아하면서 매우 깊은 법에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느니라.

아난아, 천 세계 중생이 이 소리를 듣고는 물러감 없는 보리에 머무르며 한량없는 중생이 무생법인을 얻느니라.
다시 아난아, 만일 중생이 보리수를 보고 그 소리를 듣거나 향기를 맡거나 그 과일을 맛보거나 그 빛과 그림자에 부딪치거나 나무의 공덕을 생각하거나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열반을 얻을 때까지 다섯 감관이 걱정이 없고 마음이 산란치 않으며,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불퇴전을 얻으리라.

다시 이 보리수를 봄으로 말미암아 세 가지 법의 지혜[法忍]을 얻나니 셋이라 함은 첫째는 수성인(隨聲忍)이요, 둘째는 수순인(隨順忍)이요, 셋째는 무생법인이니라.

이것은 다 무량수불의 본원 위신력으로 힘입은 바이며 일찍이 선정[靜慮]을 닦았으되 견줄 데 없는 까닭이며, 모든 원이 이지러짐이 없는 까닭이며, 잘 닦아 익힌 까닭이며, 잘 거두어 받은 까닭이며 잘 성취한 까닭이니라.”

by 백운청산 | 2008/12/04 20:02 | 대보적경 | 트랙백 | 덧글(0)

대반야바라밀다경 제191권 /34. 난신해품 ⑩


대반야바라밀다경 제191권


34. 난신해품 ⑩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보시바라밀다의 청정함이요, 보시바라밀다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보시바라밀다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목숨의 청정함이 곧 정계 안인 정진 정려 반야 바라밀다의 청정함이요, 정계바라밀다 내지 반야바라밀다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정계바라밀다 내지 반야바라밀다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내공의 청정함이요, 내공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내공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목숨의 청정함이 곧 외공 내외공 공공 대공 승의공 유위공 무위공 필경공 무제공 산공 무변이공 본성공 자상공 공상공 일체법공 불가득공 무성공 자성공 무성자성공의 청정함이요, 외공 내지 무성자성공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외공 내지 무성자성공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진여의 청정함이요, 진여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진여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목숨의 청정함이 곧 법계 법성 불허망성 불변이성 평등성 이생성 법정 법주 실제 허공계 부사의계의 청정함이요, 법계 내지 부사의계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법계 내지 부사의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이요,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목숨의 청정함이 곧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이요,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4정려의 청정함이요, 4정려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4정려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목숨의 청정함이 곧 4무량 4무색정의 청정함이요, 4무량 4무색정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4무량 4무색정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8해탈의 청정함이요, 8해탈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8해탈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목숨의 청정함이 곧 8승처 9차제정 10변처의 청정함이요, 8승처 9차제정 10변처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8승처 9차제정 10변처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4념주의 청정함이요, 4념주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4념주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목숨의 청정함이 곧 4정단 4신족 5근 5력 7등각지 8성도지의 청정함이요, 4정단 내지 8성도지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4정단 내지 8성도지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공해탈문의 청정함이요, 공해탈문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공해탈문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목숨의 청정함이 곧 무상 무원 해탈문의 청정함이요, 무상 무원 해탈문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무상 무원 해탈문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보살의 10지의 청정함이요, 보살의 10지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보살의 10지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5안의 청정함이요, 5안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5안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목숨의 청정함이 곧 6신통의 청정함이요, 6신통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6신통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부처님의 10력의 청정함이요, 부처님의 10력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부처님의 10력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목숨의 청정함이 곧 4무소외와 4무애해와 대자 대비 대희 대사와 18불불공법의 청정함이요, 4무소외 내지 18불불공법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4무소외 내지 18불불공법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잊음이 없는 법의 청정함이요, 잊음이 없는 법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잊음이 없는 법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목숨의 청정함이 곧 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의 청정함이요, 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일체지의 청정함이요, 일체지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일체지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목숨의 청정함이 곧 도상지 일체상지의 청정함이요, 도상지 일체상지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도상지 일체상지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온갖 다라니문의 청정함이요, 온갖 다라니문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온갖 다라니문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목숨의 청정함이 곧 온갖 삼마지문의 청정함이요, 온갖 삼마지문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온갖 삼마지문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예류과의 청정함이요, 예류과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예류과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목숨의 청정함이 곧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의 청정함이요,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독각의 깨달음의 청정함이요, 독각의 깨달음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독각의 깨달음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온갖 보살마하살의 행의 청정함이요, 온갖 보살마하살의 행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온갖 보살마하살의 행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목숨의 청정함이 곧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청정함이요,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청정함이 곧 목숨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목숨의 청정함과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또 선현아, 나는 것[生者]의 청정함이 곧 물질의 청정함이요, 물질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물질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청정함이요,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눈의 영역의 청정함이요, 눈의 영역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눈의 영역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귀 코 혀 몸 뜻의 영역의 청정함이요, 귀 코 혀 몸 뜻의 영역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귀 코 혀 몸 뜻의 영역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빛깔의 영역의 청정함이요, 빛깔의 영역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빛깔의 영역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의 영역의 청정함이요,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의 영역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의 영역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눈의 경계의 청정함이요, 눈의 경계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눈의 경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빛깔의 경계 안식의 경계와 눈의 접촉 및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요, 빛깔의 경계 내지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빛깔의 경계 내지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귀의 경계의 청정함이요, 귀의 경계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귀의 경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소리의 경계 이식의 경계와 귀의 접촉 및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요, 소리의 경계 내지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소리의 경계 내지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코의 경계의 청정함이요, 코의 경계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코의 경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냄새의 경계 비식의 경계와 코의 접촉 및 코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요, 냄새의 경계 내지 코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냄새의 경계 내지 코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혀의 경계의 청정함이요, 혀의 경계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혀의 경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맛의 경계 설식의 경계와 혀의 접촉 및 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요, 맛의 경계 내지 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맛의 경계 내지 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몸의 경계의 청정함이요, 몸의 경계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몸의 경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감촉의 경계 신식의 경계와 몸의 접촉 및 몸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요, 감촉의 경계 내지 몸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감촉의 경계 내지 몸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뜻의 경계의 청정함이요, 뜻의 경계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뜻의 경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법의 경계 의식의 경계와 뜻의 접촉 및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요, 법의 경계 내지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법의 경계 내지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지계의 청정함이요, 지계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지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수계 화계 풍계 공계 식계의 청정함이요, 수계 화계 풍계 공계 식계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수계 화계 풍계 공계 식계의 청정함과는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무명의 청정함이요, 무명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무명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지어감 의식 이름과 물질 여섯 감관 접촉 느낌 애욕 취함 존재 태어남 늙음과 죽음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의 청정함이요, 지어감 내지 늙음과 죽음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지어감 내지 늙음과 죽음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보시바라밀다의 청정함이요, 보시바라밀다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보시바라밀다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정계 안인 정진 정려 반야 바라밀다의 청정함이요, 정계바라밀다 내지 반야바라밀다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정계바라밀다 내지 반야바라밀다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내공의 청정함이요, 내공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내공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외공 내외공 공공 대공 승의공 유위공 무위공 필경공 무제공 산공 무변이공 본성공 자상공 공상공 일체법공 불가득공 무성공 자성공 무성자성공의 청정함이요, 외공 내지 무성자성공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외공 내지 무성자성공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진여의 청정함이요, 진여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진여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법계 법성 불허망성 불변이성 평등성 이생성 법정 법주 실제 허공계 부사의계의 청정함이요, 법계 내지 부사의계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법계 내지 부사의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이요,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이요,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4정려의 청정함이요, 4정려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4정려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4무량 4무색정의 청정함이요, 4무량 4무색정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4무량 4무색정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8해탈의 청정함이요, 8해탈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8해탈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8승처 9차제정 10변처의 청정함이요, 8승처 9차제정 10변처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8승처 9차제정 10변처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4념주의 청정함이요, 4념주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4념주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4정단 4신족 5근 5력 7등각지 8성도지의 청정함이요, 4정단 내지 8성도지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4정단 내지 8성도지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공해탈문의 청정함이요, 공해탈문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공해탈문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무상 무원 해탈문의 청정함이요, 무상 무원 해탈문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무상 무원 해탈문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보살의 10지의 청정함이요, 보살의 10지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보살의 10지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5안의 청정함이요, 5안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5안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6신통의 청정함이요, 6신통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6신통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부처님의 10력의 청정함이요, 부처님의 10력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부처님의 10력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4무소외와 4무애해와 대자 대비 대희 대사와 18불불공법의 청정함이요, 4무소외 내지 18불불공법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4무소외 내지 18불불공법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잊음이 없는 법의 청정함이요, 잊음이 없는 법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잊음이 없는 법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의 청정함이요, 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일체지의 청정함이요, 일체지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일체지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도상지 일체상지의 청정함이요, 도상지 일체상지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도상지 일체상지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온갖 다라니문의 청정함이요, 온갖 다라니문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온갖 다라니문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온갖 삼마지문의 청정함이요, 온갖 삼마지문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온갖 삼마지문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예류과의 청정함이요, 예류과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예류과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의 청정함이요,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독각의 깨달음의 청정함이요, 독각의 깨달음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독각의 깨달음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온갖 보살마하살의 행의 청정함이요, 온갖 보살마하살의 행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온갖 보살마하살의 행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나는 것의 청정함이 곧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청정함이요,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청정함이 곧 나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나는 것의 청정함과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또 선현아, 기르는 것[養育者]의 청정함이 곧 물질의 청정함이요, 물질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물질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청정함이요,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눈의 영역의 청정함이요, 눈의 영역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눈의 영역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귀 코 혀 몸 뜻의 영역의 청정함이요, 귀 코 혀 몸 뜻의 영역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귀 코 혀 몸 뜻의 영역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빛깔의 영역의 청정함이요, 빛깔의 영역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빛깔의 영역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의 영역의 청정함이요,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의 영역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의 영역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눈의 경계의 청정함이요, 눈의 경계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눈의 경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빛깔의 경계 안식의 경계와 눈의 접촉 및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요, 빛깔의 경계 내지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빛깔의 경계 내지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귀의 경계의 청정함이요, 귀의 경계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귀의 경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소리의 경계 이식의 경계와 귀의 접촉 및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요, 소리의 경계 내지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소리의 경계 내지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코의 경계의 청정함이요, 코의 경계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코의 경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냄새의 경계 비식의 경계와 코의 접촉 및 코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요, 냄새의 경계 내지 코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냄새의 경계 내지 코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혀의 경계의 청정함이요, 혀의 경계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혀의 경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맛의 경계 설식의 경계와 혀의 접촉 및 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요, 맛의 경계 내지 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맛의 경계 내지 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몸의 경계의 청정함이요, 몸의 경계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몸의 경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감촉의 경계 신식의 경계와 몸의 접촉 및 몸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요, 감촉의 경계 내지 몸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감촉의 경계 내지 몸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뜻의 경계의 청정함이요, 뜻의 경계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뜻의 경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법의 경계 의식의 경계와 뜻의 접촉 및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요, 법의 경계 내지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법의 경계 내지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지계의 청정함이요, 지계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지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수계 화계 풍계 공계 식계의 청정함이요, 수계 화계 풍계 공계 식계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수계 화계 풍계 공계 식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무명의 청정함이요, 무명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무명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지어감 의식 이름과 물질 여섯 감관 접촉 느낌 애욕 취함 존재 태어남 늙음과 죽음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의 청정함이요, 지어감 내지 늙음과 죽음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지어감 내지 늙음과 죽음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보시바라밀다의 청정함이요, 보시바라밀다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보시바라밀다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정계 안인 정진 정려 반야 바라밀다의 청정함이요, 정계바라밀다 내지 반야바라밀다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정계바라밀다 내지 반야바라밀다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내공의 청정함이요, 내공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내공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외공 내외공 공공 대공 승의공 유위공 무위공 필경공 무제공 산공 무변이공 본성공 자상공 공상공 일체법공 불가득공 무성공 자성공 무성자성공의 청정함이요, 외공 내지 무성자성공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외공 내지 무성자성공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진여의 청정함이요, 진여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진여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법계 법성 불허망성 불변이성 평등성 이생성 법정 법주 실제 허공계 부사의계의 청정함이요, 법계 내지 부사의계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법계 내지 부사의계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이요,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이요,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4정려의 청정함이요, 4정려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4정려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4무량 4무색정의 청정함이요, 4무량 4무색정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4무량 4무색정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8해탈의 청정함이요, 8해탈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8해탈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8승처 9차제정 10변처의 청정함이요, 8승처 9차제정 10변처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8승처 9차제정 10변처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4념주의 청정함이요, 4념주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4념주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4정단 4신족 5근 5력 7등각지 8성도지의 청정함이요, 4정단 내지 8성도지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4정단 내지 8성도지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공해탈문의 청정함이요, 공해탈문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공해탈문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무상 무원 해탈문의 청정함이요, 무상 무원 해탈문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무상 무원 해탈문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 곧 보살의 10지의 청정함이요, 보살의 10지의 청정함이 곧 기르는 것의 청정함이니, 왜냐 하면 이 기르는 것의 청정함과 보살의 10지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짐도 없으며 다름이 없고 끊어짐도 없기 때문이니라."

by 백운청산 | 2008/12/04 19:58 | 대반야바라밀경 | 트랙백 | 덧글(0)

중아함경 제 38 권/ 12. 범지품 ④/152) 앵무경


중아함경 제 38 권


12. 범지품 ④

[여기서부터 제4 분별송(分別誦)인데 이 송에는 총 3품 반,1) 35경이 수록되어 있다. 앵무경(鸚鵡經) 수한제경(鬚閑提經)과 바라바당경(婆羅婆堂經)과 수달다경(須達?經) 범파라연경(梵波羅延經)과 황로원경(黃蘆園經) 두나경(頭那經)과 아가라하나경(阿伽羅訶那經)과 아란나경(阿蘭那經) 범마경(梵摩經)이다.]

152) 앵무경(鸚鵡經)2) 제 11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을 유행하실 적에 죽림가란다원(竹林加蘭?園)에 머무셨다. 그 때 도제(都題)의 아들 앵무마납(鸚武摩納)은 잠깐 일이 있어, 왕사성에 가서 어느 거사 집에 묵고 있었다. 이에 도제의 아들 앵무마납은 그가 묵는 집의 거사에게 물었다.
"혹 뭇 논사들의 종주(宗主)로서, 대중을 통솔하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내가 때때로 가서 뵙고 받들어 공경할 만하며, 그로 말미암아 받들어 공경할 때 나를 기쁘게 할 만한 사문 범지가 있습니까?"

거사가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천애(天愛 : 尊者)시여, 사문 구담은 석종자(釋種子)로서 석가 종족을 버리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워, 무상정진각(無上正盡覺)3)을 깨달았습니다. 천애시여, 그는 때로 가서 뵙고 받들어 공경할 만하며, 그로 말미암아 받들어 공경할 때 마음에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앵무마납은 곧 다시 물었다.
"사문 구담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나는 가서 뵙고 싶습니다."
"사문 구담은 이 왕사성의 죽림가란다원에 계시니, 곧 가서 보시면 됩니다."

앵무마납은 그가 묵던 거사 집에서 나와 죽림가란다원으로 갔다. 앵무마납은 숲 사이에 계시는 세존을 멀리서 뵈었는데, 그 모습은 단정하고 아름다워 별 속의 달과 같았고, 빛나고 밝고 환하여 금산(金山)과 같았으며, 상호(相好)를 구족하고 위신은 위풍당당했으며, 모든 근(根)은 고요하여 가려진 것이 없었고, 조어(調御)를 성취해 마음이 쉬어 고요하였다. 그는 부처님을 본 뒤에 부처님 처소로 나아가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여쭙고 싶은 것이 있는데 허락하신다면 감히 여쭙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마음대로 물으라."
앵무마납이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제가 들은 바로는 만일 집에 있으면 잘 이해하여 곧 법답게 알지만, 출가하여 도를 배우면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제가 구담께 여쭙나니,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일정하지 않느니라."
"구담이시여, 원컨대 이제 저를 위하여 이 일을 분별해 주십시오."
"마납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 마땅히 너를 위하여 자세히 분별하여 설명하겠다."

앵무마납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납아, 만일 집에 있거나 출가하여 도를 배우거나, 삿된 행을 행하는 사람을 나는 칭찬하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만일 집에 있거나 출가하여 도를 배우거나, 삿된 행을 행하는 사람은 잘 이해하지 못하여 법답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마납아, 만일 집에 있거나 출가하여 도를 배우거나, 삿된 행을 행하는 사람을 나는 칭찬하지 않느니라. 마납아, 만일 집에 있거나 출가하여 도를 배우거나, 바른 행을 행하는 사람을 나는 칭찬하느니라. 왜냐 하면 만일 집에 있거나 출가하여 도를 배우거나, 바른 행을 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잘 이해하여 법답게 알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마납아, 만일 집에 있거나 출가하여 도를 배우거나, 바른 행을 행하는 사람을 나는 칭찬하느니라.

마납아, 나는 이와 같이 말하여 이 두 가지 법을 말했고, 이와 같이 분별하고, 이와 같이 나타내 보였느니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능력이 있고 견고하여, 깊이 심취해 한결같이 오로지 힘쓰면, 이것을 진리[眞諦]라 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 하느니라."

앵무마납이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제가 들은 바로는 만일 집에 있으면 큰 이익이 있고 큰 공덕이 있지만 출가하여 도를 배우면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제가 구담께 여쭙나니,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일정하지 않느니라."
"구담이시여, 원컨대 저를 위해 이 일을 다시 분별해 주십시오."
"마납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 마땅히 너를 위하여 자세히 분별해 설명하겠다."

앵무마납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납아, 만일 집에 있는 사람이 큰 재환(災患)이 있고, 큰 싸움이 있으며, 큰 원망과 미움이 있어서 삿된 행을 행하면, 큰 과보를 얻지 못하고 큰 공덕도 없느니라. 마치 농사지을 때 큰 재환이 있고 큰 싸움이 있으며, 큰 원망과 미움이 있어서 삿된 행을 행하면, 큰 과보를 얻지 못하고 큰 공덕이 없는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이 마납아, 집에 있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마납아,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사람이 사소한 재환이 있고 사소한 다툼이 있으며, 사소한 원망과 미움이 있어서 삿된 행을 행하면 큰 과보를 얻지 못하고 큰 공덕도 없느니라. 마치 살림살이에 사소한 재환이 있고, 사소한 싸움이 있거나 사소한 원망과 미움이 있어서 삿된 행을 행하면, 큰 과보를 얻지 못하고 큰 공덕이 없는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이 마납아,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마납아, 만일 집에 있는 사람이 큰 재환이 있고 큰 싸움이 있으며, 큰 원망과 미움이 있더라도 바른 행을 행하면 큰 과보를 얻고 큰 공덕이 있느니라. 마치 농사지을 때 큰 재환이 있고 큰 싸움이 있으며, 큰 원망과 미움이 있더라도 바른 행을 행하면, 큰 과보가 있고 큰 공덕이 있는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이 마납아, 집에 있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마납아,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사람이 사소한 재환이 있고 사소한 싸움이 있으며, 사소한 원망과 미움이 있더라도 바른 행을 행하면, 큰 과보를 얻고 큰 공덕이 있느니라. 마치 살림살이에 사소한 재환이 있고 사소한 싸움이 있으며, 사소한 원망과 미움이 있더라도 바른 행을 행하면 큰 과보를 얻고, 큰 공덕이 있는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이 마납아,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마납아, 나는 이와 같이 말하여 이 두 가지 법을 말했고, 이와 같이 분별하고, 이와 같이 나타내 보였느니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능력이 있고 견고하여, 깊이 심취해 한결같이 오로지 힘쓰면, 이것을 진리라 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 하느니라."

앵무마납이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저 모든 범지들은 5법4)을 시설하여, 큰 과보가 있고 큰 공덕이 있으며, 복을 짓고 선을 얻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모든 범지들이 5법을 시설하여, 큰 과보가 있고 큰 공덕이 있으며, 복을 짓고 선을 얻는다면, 너는 이 대중 가운데서 지금 말할 수 있겠는가?"
"구담이시여, 저는 그렇게 못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구담이시여, 저는 지금 이 대중 가운데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곧 말해보라."

앵무마납은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잘 들어주십시오. 범지는 첫째로 진제법(眞諦法)을 시설하여 큰 과보가 있고 큰 공덕이 있으며, 복을 짓고 선을 얻습니다. 둘째는 송습(誦習)이요, 셋째는 열행(熱行)이며, 넷째는 고행(苦行)입니다. 구담이시여, 범지는 다섯째로 범행(梵行)을 시설하여, 큰 과보가 있고 큰 공덕이 있으며, 복을 짓고 선을 얻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범지가 5법을 시설하여, 큰 과보가 있고 큰 공덕이 있으며, 복을 짓고 선을 얻는다면, 그 범지 가운데 혹 이와 같은 말을 한 범지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는가?
'나는 이 5법을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았으며, 스스로 증득하고 나서 그 과보를 시설한다.' "
"없습니다. 구담이시여."
"그러면 어떤 스승이나 또는 그 조사(祖師), 나아가 7대 부모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있는가?
'나는 이 5법을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았으며, 스스로 증득하고 나서 그 과보를 시설한다.' "
"없습니다, 구담이시여."

그 때 세존께서 물으셨다.
"마납아, 혹 옛날의 어떤 범지는 수(壽)가 끝나고 명(命)을 마치도록 경서를 외워 지녔고 경서를 널리 유포했으며, 경전을 외워 익혔다. 그 중 첫째는 야타(夜 )요, 둘째는 바마(婆摩)이며, 셋째는 바마제바(婆摩提婆)요, 넷째는 비사밀다라(毗奢蜜?邏)이며, 다섯째는 야바타건니(夜婆陀?尼)요, 여섯째는 응의라바(應疑羅婆)이며, 일곱째는 바사타(婆私 )요, 여덟째는 가섭(迦葉)이며, 아홉째는 바라바(婆羅婆)요, 열째는 바화(婆)였다. 지금의 모든 범지들은 곧 그들의 경전을 모두 외워 익히고, 지니고 배운다. 그들은 혹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있는가?
'나는 이 5법을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았으며, 스스로 증득하고 나서 그 과보를 시설한다.' "

"없습니다, 구담이시여. 모든 범지들은 그저 믿음으로 받아 지닙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모든 범지 중에서 한 범지도 '나는 이 5법을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았으며, 스스로 증득하고 나서 그 과보를 시설한다'고 말하지 못했고, 또한 스승이나 또는 그 조사(祖師), 나아가 7대 부모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 5법을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았으며, 스스로 증득하고 나서 그 과보를 시설한다'고 말한 사람이 없으며, 또한 옛날에 수(壽)가 끝나고 명(命)을 마치도록 경서를 외워 지니고서 경서를 널리 펴며, 경전을 외워 익힌 범지들, 즉 첫째는 야타, 둘째는 바마, 셋째는 바마제바, 넷째는 비사밀다라, 다섯째는 야바타건니, 여섯째는 응의라바, 일곱째는 바사타, 여덟째는 가섭, 아홉째는 바라바, 열째는 바화인데, 지금의 모든 범지들도 그들의 경전을 모두 외워 익히고 지니고 배우면서 그들도 '나는 이 5법을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았으며, 스스로 증득하고 나서 과보를 시설한다'고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마납아, 그 모든 범지들은 이로써 믿어 향하는 가운데 근본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구담이시여, 사실 근본이 없습니다. 모든 범지들은 그저 그런 말을 들은 뒤에 받아 지닐 뿐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치 여러 장님이 서로를 의지해 잡고 가는데, 앞서가는 자는 뒤도 보지 못하고 또한 가운데도 보지 못하며, 그 가운데 있는 자는 앞도 보지 못하고 또한 뒤도 보지 못하며, 뒤에 있는 자는 가운데도 보지 못하고 또한 앞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마납아, 네가 말하는 모든 범지 무리들도 또한 그와 같다. 마납아, 아까는 믿음을 말하더니 이제는 들음을 말하는구나."

그러자 앵무마납은 세존께 성을 내고 미워하면서 기뻐하지 않았고, 오히려 세존을 비방하고 세존께 손가락질하며, 세존을 꾸짖었다. 그리고 구담을 비방하고 구담을 손가락질하며, 구담을 떨어뜨리고자 세존께 말하였다.
"어떤 범지가 있는데 이름을 불가사사라(弗袈娑娑羅)라 하며, 성질이 곧고 청정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자기는 사람보다 위되는 법[人上法]에 있어 앎이 있고 봄이 있어서 현재의 자기는 증득한 자라고 하면, 저는 그 말을 듣고는 크게 웃으며 옳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허망하여 진실이 아니요, 또한 법답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 가운데 나서, 스스로 사람보다 위되는 법을 얻었다고 말하는가? 만일 사람보다 위되는 법에 있어서, 자기는 알고 자기는 보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

이에 세존께서는 곧 이렇게 생각하셨다.
'도제의 아들 앵무마납은 나에게 성을 내고 미워하며 기뻐하지 않고 있구나. 나를 비방하고 나를 손가락질하며 나를 꾸짖고 있다. 그리고 구담을 비방하고 구담을 손가락질하고 구담을 떨어뜨리고자, 내게 이런 말을 하였다.
(구담이시여, 이름을 불가사사라라 하는 성질이 곧고 청정한 어떤 범지는 말하기를, 곧, 어떤 사문 범지가 말하기를, 자기는 사람보다 위되는 법에 있어 앎이 있고 봄이 있어서, 현재의 자기는 증득한 자라고 한다면, 나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며 옳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허망하여 진실이 아니요, 또한 법답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 가운데 나서, 스스로 사람보다 위되는 법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일 사람보다 위되는 법에 있어서 자기는 알고 자기는 보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라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미 그런 줄 아시고서 말씀하셨다.
"마납아, 범지 불가사사라는 성질이 곧고 청정하였다. 그는 모든 사문 범지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다 안 뒤에 이런 말을 했겠는가?
'혹 어떤 사문 범지가 말하기를, 자기는 사람보다 위되는 법에 있어 앎이 있고 봄이 있어서, 현재의 자기는 증득한 자라고 한다면, 나는 그 말을 듣고는 크게 웃으며, 옳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허망하여 진실이 아니요, 또한 법답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 가운데 나서, 스스로 사람보다 위되는 법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일 사람보다 위되는 법에 있어서 자기는 알고 자기는 보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

"구담이시여, 범지 불가사사라는 성질이 곧고 청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불니(不尼)라는 한 여종이 있었는데, 불가사사라는 그 여종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도 알지 못했거늘, 하물며 모든 사문 범지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알 수 있겠습니까? 만일 안다고 한다면 끝내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치 나면서부터 장님인 사람이 말하기를 '검고 흰 빛깔도 없고, 또한 검고 흰 빛깔을 보는 자도 없으며, 좋고 나쁜 빛깔도 없고, 또한 좋고 나쁜 빛깔을 보는 자도 없으며, 길고 짧은 빛깔도 없고, 또한 길고 짧은 빛깔을 보는 자도 없으며, 가깝고 먼 빛깔도 없고, 또한 가깝고 먼 빛깔을 보는 자도 없으며, 굵고 가는 빛깔도 없고, 또한 굵고 가는 빛깔을 보는 자도 없다. 나는 처음부터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빛깔은 없는 것이다'고 하는 것과 같나니, 그 장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진실하다고 하겠는가?"

앵무마납이 세존께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왜냐 하면 검고 흰 빛깔도 있고, 또한 검고 흰 빛깔을 보는 자도 있으며, 좋고 나쁜 빛깔도 있고, 또한 좋고 나쁜 빛깔을 보는 자도 있으며, 길고 짧은 빛깔도 있고, 또한 길고 짧은 빛깔을 보는 자도 있으며, 가깝고 먼 빛깔도 있고, 또한 가깝고 먼 빛깔을 보는 자도 있으며, 굵고 가는 빛깔도 있고, 또한 굵고 가는 빛깔을 보는 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나는 처음부터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빛깔이 없다'고 그 장님이 이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진실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마납아, 범지 불가사사라는 성질이 곧고 청정하였지만, 그가 말한 것은 나면서부터 눈 없는 사람과 같지 않겠는가?"
"구담이시여, 장님과 같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납아,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옛날에 수(壽)가 다하고 명(命)을 마치도록 경서를 외워 지니고 경서를 널리 유포하며, 경전을 외워 익힌 범지가 있었다면, 이른바 상가(商伽) 범지 생문(生聞) 범지 불가사사라(弗袈娑娑羅) 범지와 또 너의 아버지 도제(都題)이다. 혹 그들의 말은 옳기도 하고 옳지 않기도 하며, 참되기도 하고 참되지 않기도 하며, 높은 것도 있고 낮은 것도 있었는가?"
"만일 옛날에 수를 다하고 명을 마치도록 경서를 외워 지니고, 경서를 널리 유포하며, 경전을 외워 익힌 범지가 있었다면, 이른바 상가 범지 생문 범지 불가사사라 범지와 또 저의 아버지 도제일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말이 옳아서 옳지 않음이 없고, 참되서 참되지 않음이 없으며, 높아서 낮음이란 없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그 때 세존께서 물으셨다.
"마납아, 범지 불가사사라는 성질이 곧고 청정하였지만, 그가 말한 바는 옳지 않아서 옳음이 없다고 하지 않겠는가? 참되지 않아서 참됨이 없다고 하지 않겠는가? 지극히 낮아서 높음이 없다고 하지 않겠는가?"

"사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다시 또 마납아, 장애가 되고 덮개[覆蓋]가 되며, 눈 없는 장님을 만들고 지혜를 멸하며, 한낱 제 스스로를 피로하게 할 뿐 열반을 얻지 못하게 하는 다섯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마납아, 탐욕심이 그 첫 번째 법으로서, 장애가 되고 덮개가 되며, 눈 없는 장님을 만들고 지혜를 멸하며, 한낱 제 스스로를 피로하게 할 뿐 열반을 얻지 못하게 한다. 마납아, 성냄과 몸에 대한 견해와 계에 대한 집착도 또한 그러하며, 의심이 다섯 번째 법으로서, 장애가 되고 덮개가 되며, 눈 없는 장님을 만들고, 지혜를 멸하며, 한낱 제 스스로를 피로하게 할 뿐 열반을 얻지 못하게 하느니라. 마납아,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이 다섯 가지 법에 걸리고 덮이며 묶이고도 그가 혹 자기의 이치를 관찰하고 남의 이치를 관찰하며, 자기와 남의 두 이치를 함께 관찰하고 또 모든 사문 범지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알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마납아, 범지 불가사사라는 성질이 곧고 청정하였지만, 탐욕에 물들고 탐욕에 더럽혀지며, 탐욕에 접촉하고 탐욕에 의지하며, 탐욕에 집착하고, 탐욕 속에 들어가 재환(災患)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을 몰라 탐욕을 행했다. 그는 이 다섯 가지 법에 걸리고 덮이며 묶였으니, 그는 혹 자기의 이치를 관찰하고 남의 이치를 관찰하며, 자기와 남의 두 이치를 함께 관찰하고 또 모든 사문 범지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알려고 하더라도 끝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또 마납아, 사랑스럽게 생각하고 뜻으로 즐거워하는 5욕(欲)의 공덕이 있다. 그것은 빛깔을 사랑하고, 탐욕과 상응하며 매우 즐거워할 만한 것이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눈으로 빛깔을 알고, 귀로 소리를 알며, 코로 냄새를 알고, 혀로 맛을 알며, 몸으로 촉감을 아는 것이다. 마납아,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중생은 이 5욕의 공덕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을 내고 기쁨을 내는데, 다시 이보다 더한 것은 없겠느냐?"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세존께서 물으셨다.
"마납아,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초목을 인(因)으로 하여 불을 붙이는 것과 초목을 떠나서 불을 붙이는 것 중에 어느 불꽃이 가장 위이고, 가장 묘하며, 가장 훌륭하겠는가?"
"구담이시여, 초목을 떠나서 불을 붙인다는 것은 끝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여의족(如意足)의 능력이 있어야 가능할 뿐입니다. 구담이시여, 만일 초목을 떠나서 불을 붙인다면, 그 불꽃은 가장 위이고, 가장 묘하며, 가장 훌륭할 것입니다."
"그렇고 그렇다. 마납아, 만일 초목을 떠나서 불을 붙인다는 것은 끝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여의족의 능력이 있어야 가능할 뿐이니라. 만일 초목을 떠나서 불을 붙인다면, 그 불꽃은 가장 위이고, 가장 묘하며, 가장 훌륭할 것이다. 내가 이제 가정해서 말하겠다. 마납아, 초목을 인으로 하여 불을 붙이는 것과 같이, 이렇게 중생이 일으킨 기쁨과 즐거움[喜樂]은 이른바 탐욕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인한 것으로 평정의 즐거움[捨樂]을 얻지는 못하고 고요히 쉼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마납아, 초목을 떠나서 불을 붙이는 것과 같이, 이렇게 중생이 일으킨 평등한 즐거움은 이른바 탐욕을 떠나고 모든 착한 법을 따르는 것으로 평등한 즐거움을 얻고 고요히 쉼에 이룰 수 있는 것이니라."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납아,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범지가 재(齋)를 베풀고 보시를 행할 때, 혹 동쪽에서 어떤 찰리 동자가 와서 그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저 중에서 제일 좋은 자리와 제일 좋은 손 씻을 물과 제일 좋은 음식을 얻으리라.'
그는 그 중 제일 좋은 자리와 제일 좋은 손 씻을 물과 제일 좋은 음식을 얻지 못하면, 곧 원망하며 미움을 품을 것이다. 혹은 남쪽에서 어떤 범지 동자가 와서 그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저 중에서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을 얻으리라.'
그는 그 중에서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을 얻지 못하면 곧 원망하여 미움을 품을 것이다. 혹은 서쪽에서 어떤 거사 동자가 와서 그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저 중에서 배부른 음식을 얻으리라.'
그는 그 중에서 배부른 음식을 얻지 못하면 곧 원망하며 미움을 품을 것이다. 혹은 북쪽에서 어떤 공사(工師) 동자가 와서 그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저 중에서 풍족한 음식을 얻으리라.'
그는 그 중에서 풍족한 음식을 얻지 못하면 곧 원망하며 미움을 품을 것이다. 마납아, 그 모든 범지들은 이러한 보시에 어떠한 과보가 있다고 시설하는가?"

앵무마납이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범지는 이러한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지 않았는데, 남으로 하여금 원망하고 미움을 품게 한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그러나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범지는 가엾게 여기는 마음으로 보시를 행했으므로, 가엾게 여기는 마음으로 보시를 행한 뒤에 곧 큰 복을 얻을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납아, 범지는 큰 과보가 있고 큰 공덕이 있으며, 복을 짓고 선(善)을 얻는 여섯 번째 법을 시설하지는 않는가?"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세존께서 물으셨다.
"마납아, 만일 어떤 범지가 다섯 가지 법을 시설하여 큰 과보가 있고 큰 공덕이 있으며, 복을 짓고 선을 얻는다면, 너는 이 법이 어느 곳에 많이 있다고 보느냐? 집에 있다 하겠느냐,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데 있다고 하겠느냐?"

"구담이시여, 만일 어떤 범지가 다섯 가지 법을 시설하여 큰 과보가 있고, 큰 공덕이 있으며, 복을 짓고, 선을 얻는다면, 저는 이 법은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데 많이 있고, 집에 있지 않다고 봅니다. 왜냐 하면 집에 있는 이는 일이 많아서 할 일이 많고, 원한 맺음이 많으며, 미움과 다툼이 많아서, 그는 참된 진리를 수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담이시여,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이는 일이 적어서 할 일이 적고, 원한 맺음이 적으며, 미움과 다툼이 적어서, 그는 반드시 참된 진리를 수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저는 저 참된 진리가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데 많이 있고, 집에는 있지 않다고 봅니다. 왜냐 하면 집에 있는 이는 일이 많아서 할 일이 많고, 원한 맺음이 많으며, 미움과 다툼이 많아서, 그는 보시를 행할 수 없고, 외워 익힐 수 없으며, 고행(苦行)을 행할 수 없고, 범행(梵行)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담이시여,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이는 일이 적어 할 일이 적고, 원한을 맺음이 적으며, 미움과 다툼이 적어서 그는 보시를 행할 수 있고, 그는 외워 익힐 수 있으며, 고행을 행할 수 있고, 범행을 행할 수 있습니다. 구담이시여, 범행을 행하는 것, 저는 이 법은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데 많이 있고, 집에는 있지 않다고 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납아, 만일 어떤 범지가 다섯 가지 법을 시설하여 큰 과보가 있고 큰 공덕이 있으며, 복을 짓고 선을 얻는다면, 나는 이것은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말하리라. 어째서 마음이라 하는가? 만일 마음에 맺음[結]도 없고, 원망[怨]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諍]도 없으면, 그것을 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납아,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비구가 참된 진리를 수호한다면, 그는 참된 진리를 수호함으로 인하여 기쁨[喜]을 얻고, 즐거움[悅]을 얻을 것이니라. 마납아, 만일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으면, 선과 잘 상응하므로 나는 이것을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째서 마음이라 하는가? 만일 마음에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면, 그것을 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보시를 행할 수 있고, 외워 익힐 수 있으며, 고행을 행할 수 있고 범행을 행할 수 있다. 그는 범행을 행함으로 인하여 기쁨을 얻고, 즐거움을 얻는다. 마납아, 만일 기쁨과 즐거움이 있으면, 선과 잘 상응하므로 나는 이것을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째서 마음이라 하는가? 만일 마음에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면, 그는 자애로움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1방(方)을 가득 채워 성취하여 노닐고, 이렇게 2방 3방 4방 4유(維) 상 하의 일체에 두루할 것이다. 그는 자애로움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우고 성취하여 노닐 것이다. 불쌍히 여김[悲]과 기뻐함[喜]도 마찬가지이며, 평정함[捨]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우고 성취하여 노닐 것이다.
마납아, 마치 어떤 사람이 고둥[螺]을 잘 부는데, 만일 아직껏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곳이 있으면 그가 밤중에 높은 산에 올라가 힘껏 고둥을 불어 미묘한 소리를 내어 사방에 가득 차게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자애로움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1방(方)을 가득 채워 성취하여 노닐고, 이렇게 2방 3방 4방 4유(維) 상하의 일체에 두루하게 한다. 자애로움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 불쌍히 여김과 기뻐함도 마찬가지이며, 마음은 평정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
마납아,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이가 하늘을 구하되 기어이 천상(天上)을 구하기 때문에 곧 탐욕[貪伺]과 상응하는 마음을 쓰면서 '나는 하늘과 또 다른 하늘이 되리라'고 한다고 하자. 또 어떤 이는 하늘을 구하되 기어이 천상을 구하기 때문에 곧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한량없이 지극히 넓게 잘 닦아, 마음이 고요하고 뜻이 풀려, 두루 가득하게 성취하여 노닐면서 '나는 하늘과 또 다른 하늘이 되리라'고 한다고 하자. 네가 그들을 볼 때, 누가 하늘과 또 다른 하늘이 될 수 있겠는가?"
"구담이시여, 만일 그가 하늘을 구하되 기어이 천상을 구하기 때문에, 곧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한량없이 지극히 넓게 잘 닦아, 마음이 고요하고 뜻이 풀려, 두루 가득하게 성취하여 노닌다면 저는 그 사람이 반드시 하늘과 또 다른 하늘이 되리라고 봅니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마납아,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이가 범천(梵天)을 구하되 기어이 범천 위[上]를 구하기 때문에 곧 탐욕과 상응하는 마음을 쓰면서 '나는 범천과 또 다른 범천이 되리라'고 한다고 하자. 또 혹 어떤 이는 범천을 구하되 기어이 범천 위를 구하기 때문에 곧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한량없이 지극히 넓게 잘 닦아, 마음이 고요하고 뜻이 풀려, 두루 가득하게 성취하여 노닐면서 '나는 범천과 또 다른 범천이 되리라'고 한다고 하자. 네가 그들을 볼 때, 누가 범천과 또 다른 범천이 될 수 있겠는가?"

"구담이시여, 만일 그가 범천을 구하되 기어이 범천 위를 구하기 때문에, 곧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한량없이 지극히 넓게 잘 닦아 마음이 고요하고 뜻이 풀려, 두루 가득하게 성취하여 노닌다면, 저는 그가 범천과 또 다른 범천이 되리라고 봅니다."

앵무마납이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범도(梵道)의 자취를 아십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납아, 내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아는 대로 대답하라. 마납아,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나라가라(那羅歌邏) 마을은 이 대중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느냐?"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네가 이 대중 가운데 어떤 한 사람에게 '너는 저 나라가라 마을에 갔다가 곧 다시 돌아오라'고 한다면, 그는 너의 지시를 받고, 빨리 나라가라 마을에 갔다가 돌아올 것이다. 그가 돌아온 뒤에 네가 그 길, 곧 나라가라 마을로 가고 온 것과 나가고 들어온 일들을 물으면, 그 사람은 과연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못하겠느냐?"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납아, 그 사람은 나라가라 마을을 갔다 오고서도 그 길에 대해 물으면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못할 수는 있어도, 여래(如來) 무소착(無所著) 등정각(等正覺)께 범도의 자취를 물었을 때, 끝내 잠시라도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앵무마납이 세존께 여쭈었다.
"사문 구담이시여, 무착 천사(無著天祠)께서는 이 일을 구족하셨습니다. 곧 범도의 자취를 물으면 능히 빨리 대답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이해하였습니다. 선서(善逝)시여, 저는 이미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부처님과 법과 비구스님들께 귀의하겠습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제가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앵무마납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앵무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수는 4,561자이다.]

1) 제4 분별송에는 완전한 두 품과 두 개의 반품(半品)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범지품](後半品) [근본분별품] [심품] [쌍품](前半品)이 수록되어 있다. 고려대장경에서는 모두 합하여 3품 반이 수록되었다고 하였는 데 불광대장경에서는 사실대로 2품과 2반품이 수록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2) 이 경의 이역경으로는 유송(劉宋) 시대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한역한 『앵무경』이 있다.
3) 범어로는 anuttara-samyaksambodhi이고, 팔리어로는 anuttara sammasam bodhi의 번역. 위 없는 올바른 부처님의 깨달음 으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阿?多羅三貌三菩提)과 동일.

4) 바라문교에서 설해지는 다섯 가지 법 즉 진제(眞諦) 송습(誦習) 고행(苦行) 범행(梵行) 열행(熱行)을 말함.

by 백운청산 | 2008/12/04 19:52 | 아함경자료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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